1. 정유정 작가
감정 이입을 하고, 긴장한 채 책을 읽고 나면 몸살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스릴러, 범죄, 공포물을 싫어합니다. 스스로는 찾아 읽지 않아요. 영화도 못 보거든요. 정유정 작가의 소설들은 유명하지만 그동안 볼 생각을 못한 게 그런 장르 특성 때문이었습니다.
<완전한 행복> 책을 읽은 계기는 독서모임입니다. 재미있다고 들었다. 너무 읽고 싶은데, 혼자서는 무서울 것 같아서 함께 읽자는 추천이 있었고, 다수의 의견에 따라 선정했습니다. 저도 처음 읽는 정유정 작가의 책이라 조금 기대도 했었어요.
하지만, 책을 다 읽은 뒤 기분이 안 좋았고,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한번 더 실망했어요. 이것은 그 사건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것은 나르시시스트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한 글이다 라는 식의 말이 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고 하는 장금이처럼, 우리는 이 책에서 그 사건을 떠 올 릴 수밖에 없습니다.
2. <완전한 행복>이라는 소설
소설을 소설로만 보는 것. 소설이라고 하면 소설인 것. 제가 조금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요? 칭찬과 좋은 이야기, 긍정하는 말을 쓸 때는 이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행복>을 긍정할 수 없어서, 책장을 덮으며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했었어요. 어떤 글이든 쓸 수 있는 게 글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것이 나에게서 나온 내 이야기라면 어떤 글이라도요. 범죄자도 자기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바람직하다 여겨지지 않는 말을 발설할 수도 있습니다. 나 혼자는 어떤 글도 쓸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출판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저는 이상한 책이 출판될 때, 그걸 굳이 읽고 싶지도 않지만 어떤 연유로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나 신기합니다. 책이라 하면 글로 박제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작업을 한 사람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그 책이 널리 읽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찍어내는 것을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작가와 제작자가 좋은 의도와 마음으로 선한 영향력을 고려하여 책을 썼으면 좋겠어요. 너무 도덕적 기준이 높은 걸까요?
저는 <완전한 행복>이 <완전한 허구>였으면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그 이야기 아닌데라고 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한 사람이, 한 사건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읽을 수 있는 이야기, 그 사건의 가십거리를 읽어간 기분이었어요. 공간과 몇몇 인물, 배경이 다르지만 저는 제주도에서 전 남편이 살해당한 사건, 시신을 찾지 못하고 범인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그 사건이 떠올랐어요. 사건 현장에는 그들의 아이가 있었습니다. <완전한 행복>의 불쾌함을 따라가다 보니, 책 속에서 유나의 딸로 나온 지유에 닿았어요. 생존자가 있는 사건, 피해자의 가족이, 그리고 아이가 이 글을 읽는다면, 글을 어딘가에서 접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슬퍼집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여러 글이 있어요. 역사 소설도 많고, 여전히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을 소재로 출간되고, 상을 타기도 합니다. 좋은 책이라 입소문이 나고, 읽다 마음이 아파 가슴이 무거워지는 책, 심장이 뜨거워지는 책도 많아요. 사실을 바탕으로 한 책에서도요. 하지만 이 책은 어떤 위로도, 공감도 힘들었습니다. 그 상황에 있는 지유라는 아이가 너무 끔찍했을 뿐입니다. 피해자가 흥미를 주는 소재와 요소로 둔갑해버린 것 같았어요.
많은 피해자와 생존자는 과거와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다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저도 과거에는 학대받은 사람이 또 학대를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봤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피해자를 한번 더 상처 주는 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피해자가 잠재적인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 가해자에게 나름의 이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이야기도 그들의 지금을 참작하는 서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유나에게 부여한 서사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어요.
유나 역시, 어린날의 결핍을 겪었습니다. 나르시시스트라고 설명되는 자기애 과다의 상태. 사실 사이코패스 이야기인 것이지요. 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이 소설을 읽으며 자신을 검열하는 것이 안타까워졌습니다. 내가 아이에게 한말과 비슷한 말과 행동을 유나가 겪은 것 같아. 혹은 유나가 지유에게 한 말을 나도 한 것 같아라는 반성이요. 저 역시 결핍을 겪은 아이였고 어른이 됐습니다. 아이에게는 의연하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줄 수 있는 양육자가 되고 싶지만,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가다듬고, 애쓰는 양육자가 자신의 태도를 이런 흉악범의 말과 행동에서 경계하게 되는 것이 싫었어요.
정유정 작가의 필력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에 비해 아쉬움이 큰 책이었어요. 사건의 아픔과 충격이 커요. 언론에 떠들어댔으니 잊히지도 않았고, 정보는 넘쳐납니다. 그 명성에 맞는 책임감을 보여 주셨더라면, 이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다른 살인사건 이야기는 괜찮고, 이건 안 되냐? 어떤 살인은 허구라서 괜찮고, 이건 그 사건이 떠올라서 안 되는 거냐.. 그러게요. 그 부분이 참 어려워요. 다른 전개였다면, 다른 활약이 있었다면, 우리의 기대와 희망이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었다면 이 글이 다르게 느껴졌을까요.
자기애와 자존감에 대한 견해도 편협했다고 생각해요. 자기애와 자존감. 이 말이 여전히 헷갈립니다. 저는 둘 다 그렇게 높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요즘 우리에게 자신을 더 사랑하는 방법, 내 마음이 원하는 것, 나를 더 잘 아는 올바른 방법은 계속 공유되고, 사회의 관심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요.
물론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오로지 나만 중요한 사람을 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또라이"라고 부르죠. 똥은 더러워서 피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또라이에 대한 책입니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야기죠. 이 책은 나를 돌아보게 할 게 없었어요. 그냥 재미로 읽는 소설인데, 재미를 느낄 사건은 아니었다는 게 걸림돌이었습니다.
진정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타인 역시 존중할 수 있을 거예요. 내 마음이 소중하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 역시 중요합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것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바르게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해요. 노력하는 사람은 늘 중심으로 돌아온다고 믿어요. 돌아가거나, 튕겨나가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경계하지 말아요. 나를 사랑하는 많은 방법과 실천이 역시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길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3. 마무리
적다 보니 내가 적은 글이 상처가 되는 글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열심히 적은 글이라 그냥 사라지게 할 수도 없고, 정유정 작가의 글은 읽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는 읽어보고 싶은 책이에요. 저는 작가님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작가님도 분명,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할 거라고요. 그래서 다음에 오는 책은 더 좋은 이야기일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야기가 느슨할 수도 있고, 이번 건 별로다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고, 신작을 쓰는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고, 여러 왕관의 무게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가 작가님에게 기대하는 그 정도의 책임감은, 작가님도 마음과 귀를 열고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쓰는 사람 정유정의 더 좋은 이야기를 기대하고 바라면서 써본 글입니다. 심지어 한번 쓴 게 날아가서, 어금니 꽉 깨물고 다시 쓴 글. 포스팅이 망설여지지만 용기 내 보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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