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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김영하 신작 소설

by 매일베이지 2022.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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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영하라는 작가

이런 제목을 붙이고 김영하 작가님에 대한 신상이나 이력을 올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블로그를 혹시 애써 검색해 들어오신 분들을 위해 올리는 게 예의일지도 모르겠군요. 그저 내가 생각하는 김영하 작가의 이미지나, 잡소리를 조금 늘어놓아보려고요. 제가 쓴 글이 늘 그러하듯이요. 김영하 작가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쓰려면, 어차피 인터넷 어딘가를 검색해서 긁어와야해요. 저는 김영하 작가님을 모르고, 뵌 적도 없습니다. 위키피디아에 있는 말을 요약해서 쓸 거라면, 굳이 저까지 수많은 웹문서 중 한 장을 더할 필요가 있을까요?

오랜 김영하작가의 팬들도 많으실 거예요. 저는 김영하 작가를 TV 화면을 통해 먼저 만났습니다. <알쓸신잡>이라는 프로였어요.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에요. 그렇지만 열렬히 본방을 사수한 것도 아닙니다. 키가 크고, 언변이 좋은 작가였고, 그중 꽤 엉뚱한 상상을 던졌던 기억이 나요. <살인자의 기억법> 이 그의 대표작이라고 했지만, 유명한 작가라고 하지만, 저는 몰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일 년에 책 10권도 겨우 읽는 편이었고, 특히 소설을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먼저 읽은 책은 <여행의 이유> 입니다. 신간이 출시되자마자 바로 사서 읽었던 것 같아요. 김영하 작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졌고, 그의 글이 궁금하던 차였고, 그때까지 에세이를 좋아해서입니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너무 좋아해요. 그런데 뭐랄까, <여행의 이유>는 제가 여행하지 않고, 머무를 때 여서인지 저에게 도끼 같은 책이 되지 못했습니다. 몇 구절의 문장만 만나더라도, 가슴 설레며 빠져들 준비가 되어 있는 편인데, 기대보다는 싱거운 느낌으로 책을 덮었어요.

여전히 제게는 책보다 말이 더 좋은 작가입니다. 김영하 작가의 말을 편집한 카드 뉴스를 보며 좋았던 적이 자주 있어요. 김영하의 북클럽에서 소개한 책들도 좋았습니다. 그 파급력을 보면 작가님의 파워를 알 수 있지요. 김영하 작가는 어쨌거나, 국내 작가계의 아이돌이라 말해봅니다. 소통을 좋아하고, 그리고 잘하는 작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미디어 힘이기도 하겠지요.

 



저는 아무튼 그런면에서도 김영하 작가님을 좋아합니다. 그만의 위트가 있는 재미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인자의 기억법> 이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라 용기 내지 못했을 뿐이에요. <여행의 이유>는 왜 그런 보통의 기억으로 사라졌는지 이제는 기억도 안 납니다.

그리고 이번에 <작별인사>를 읽으며 조금, 왜 그런지에 대해 알 수 있게 됐습니다.

 

2. 작별인사를 읽고

<작별인사>는 김영하 작가의 신작입니다. 스타 작가인만큼 주변에 이미 <작별인사>를 읽기 시작하거나 읽은 분들이 많았어요. 독서모임에서도 함께 읽자 정했습니다.

<작별인사>를 읽어가며, 김영하 작가의 문체에 대해 생각했어요. 저도 어려운 말을 쓰는 문장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읽어 내려가는 게 힘들기 때문이에요. 당연히 중요한 것은 가독성입니다. 김영하 작가는 그런 면에서 거의 자연어에 가까운 단어와 문장으로 책을 썼다고 생각해요. 자연어라는 표현은 제가 생각해본 말을 쓴 것인데, 그냥 평소 말하듯 쓴 문장이었어요.

독서량이 늘다 보니 제 취향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알게 되더라고요. 저는 비유나 묘사가 아름다운 글을 좋아해요. 어떤 장면이나 현상을 눈으로 보듯, 하지만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이나 장면으로 묘사하며 보여주는 글을 좋아해요. 내가 보지 못한 시선을, 문장으로 만날 때, 금세 심장이 쿵쾅입니다. 좋은 문장 앞에서 금사빠가 돼버립니다. 주관적인 말이지요. 이 느낌을 혹시 알아주실 분 계실까요.

아무튼 김영하 작가의 글은 아쉽게도 지금까지는 제게 그런 시선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글의 취향이란 얼마나 개인적인 것이냐를 떠올리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금의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에요. 지금과 어느 날이 다를 수 있고, 그때와 지금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내 안에서도 이렇게 시차에 따라 달라지는데, 하물며 타인과 비교하면 취향이 다른 것이 당연합니다.

<작별인사> 역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보통의 글이었습니다.

 

3. <작별인사>

어떤 이별에 대한 글이겠구나 생각했어요.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는데 우선, SF 소설이라는 점에 놀랐습니다. 저는 SF를 좋아하는 편인데, 요즘 SF의 전성시대가 아닌가 생각해요. 소설의 흐름에서도 시대의 관심을 읽을 수 있잖아요. SF는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던 장르예요. 저는 <멋진 신세계>와 <1984>도 SF의 조상님이 아닌가 생각하거든요. 당시 산업화를 바라보며, 이대로 가다가는 다 죽는 암울한 미래에 대해 적은 글이니까요. 그걸 지금 읽어도 소름 돋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제 적은 <스타니스와프 렘> 역시 100년 전에 태어나 수많은 SF 소설을 남겼어요. 인류가 달에 가기 전부터 우주여행을 상상하고, 외계의 존재에 대한 글을 적었어요.

지금은 기술이 우리 가까이에 오는 만큼의 불안감, 인간성의 상실, 소통, 더 나가서는 기계의 권리, 환경에 대한 고민, 그 외에도 한계 없이 다양한 소재로 SF소설이 쏟아집니다. 제가 SF를 읽을수록 좋아하는 것이, 바로 그 다양성에 있어요.

<작별인사>는 소재 자체가 신박하지는 않았어요.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이라 다양한 해석을 나눌 수 있었어요. 누군가는 기계의 권리에 집중해서 책을 읽었고, 누군가는 이성과 감정 중심에서 나는 어느 쪽이냐에 대한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작별인사>가 경고라고 느껴졌어요. 선이를 통해 끝없이 "의식 있게 사는 인간"에 대해 말합니다. 저는 그 부분이 참 노골적으로 꼰대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구구절절 맞는 말인데,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이냐에 대한 질문을 계속 맞는 기분이었어요.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걸 다 해야 한다. 기계가 주는 안락함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그것은 이미 살아도 죽은 것이다라는 메시지요.

"이 우주 어딘가에서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드물고 귀한 일이고, 그 의식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극히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의식이 있는 동안 존재는 살아 있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어요.” p234

 

“고통에는 의미가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건 의미가 있어요. 의식과 충분한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이 세상에 넘쳐나는 불필요한 고통들을 줄일 의무가 있어요.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더 높은 지성을 갖추려고 애쓰는 것도 그걸 위해서예요.” P236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인류는 오랫동안 왜 외계인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을까 궁금해했잖아? 나는 그들도 이야기 없는 의식의 세계로 이미 진화했다고 생각해. 너무 발전한 나머지 굳이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날 필요가 없는 거야. 삶과 죽음의 문제를 오래전에 초월했으니까.”p322

김영하 작가는 이것을 신선이 되어버린 인류라 씁니다. 희, 노, 애, 락 이야기가 없는 신선의 세계입니다.
저는 우리에게 계속 이야기가 이어지길 바랍니다.

SFNal이라는 SF소설 모음집에서 이야기가 사라진 미래를 쓴 단편소설이 기억납니다. 그 세계에는 이야기를 쓰는 비밀조직이 있어요.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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