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존 러스킨
존 러스킨의 그림을 먼저 봤어요. 오래된 종이 위에 보존된 러스킨의 데생을 보고 멋지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바로 위의 그림 같은 것이지요. 러스킨의 이름을 처음 본 건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입니다. 그림에 대한 꿈 비슷한 게 있어서, 그림에 대한 글귀에 마음이 가요. 이 구절을 읽은 뒤, 제가 그리는 그림의 행복을 좀 더 잘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러스킨은 데생이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했습니다. 그냥 눈만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피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눈앞에 놓인 것을 우리 손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슨하게 관찰하는데서부터 자연스럽게 발전하여 그 구문학 요소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 되고, 따라서 그것에 대한 좀 더 확고한 기억을 가지게 된다고요.
결국 그리는것은 잘 보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요. 나에게 소중한 것을 그림으로 남기고, 그렇게 내 안에서 행복은 깊이 각인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잘 보기 위해 그리고 있습니다. 여전히요.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제목이 멋진 이 책은 제가 읽고 싶은 리스트에 빼곡하게 적힌 목록 중 한 권이었어요. 어느 책에서 저자가 추천했을 것입니다. 그 부분을 메모해두지 않아, 늘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꼭 그 책이 언급된 책이나, 저자가 어떤 이유로 좋다고 한 것인지 메모를 남겨두고 있어요. 작가들의 작가는 늘 매력 있어요. 그렇게 적어둔 wish list는 계속 길어지기만 해요. 책장에 읽지 않은 책이 쌓이듯, wish list 역시 쌓이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이 책의 부제로 적힌 말, 존 러스킨 경제학의 정수. 이 사람은 그림을 기가막히게 잘 그렸던 사람인데, 경제학 책까지 쓰다니. 정체가 무엇인가! 하고 검색해보니 직업은 문학평론가로 나오고,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미술학 교수직을 맡았습니다. 미술뿐만 아니라, 건축, 문학, 교육, 지질학 등 광범위한 문화 분야에 대한 평론을 하고, 사회운동가이자 독지가였다고 해요. 와.. 만능이네요.
2.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책을 받아보고는 작은 판형과 얇은 책이라 기분이 좋았어요. 가볍게 읽겠는데? 기대감이 커졌어요. 그런데 예상과 달리 문장이 꽉 막히고 술술 읽히지 않아 정말 힘들었습니다. 읽다가 숨 막혀서, 청소년을 위한 책은 혹시 있는지, 해설집 같은 게 있는지 검색도 해봤어요. 그만 읽고 덮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저에겐 너무 어려웠는데 그것이 번역의 문제일지, 이야기 자체가 어려워서 인지 모르겠어요.
다 읽은 뒤,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 의문이지만, 그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이렇게하지 않으면 책이 명확하게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것을 설명하는 말들이 쉽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러스킨이 말하고자 하는 생각은 정말 멋지다고, 이 당시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러스킨의 경제학은 결국 지금까지 우리가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명예의 근원, 부의 광맥, 지상의 통치자들이여, 가치에 따라서라는 4편의 논문을 엮은 책입니다. 당시 이 논문들을 발표 한 뒤 많은 비난을 받았다고 해요. 당시의 통념에는 맞지 않은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최소의 투자, 최대의 이익이라는 자본주의의 이념과도 어긋나는 부분이라서요. 공정함과 부의 재분배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러스킨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때는 시대를 앞선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더 많이 공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이지요.
다시 생각해도 읽기 어려웠지만, 러스킨의 생각들은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 요약
힘겹게 정리한 것이라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읽으며 저에게 울림을 준 부분을 정리해봤습니다.
*명예의 근원
상인의 소명을 정의합니다. 상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물건을 팔아 돈을 번다고 정의하고, 다른 직업들에 비해 더 존중받지 못합니다. (영국 사람도 그랬다고 해요.)
의사는 환자를 고쳐 돈을 법니다. 의사의 소명은 돈을 버는것이 아니라 환자를 고치는 것입니다.
법관은 법을 집행하고 돈을 벌지만, 그의 소명은 공정한 법집행입니다.
상인의 소명도 돈을 버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필요한 재화를 공급하는 것이 바로 상인의 소명입니다.
이런 소명을 가진다면 상인이라는 일은 명예롭다는 말입니다.
경제의 근본 역시 애정이라 말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같은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를 희망합니다. 내 아들이라면 어떻게 일을 시키고 처우할 것인가 고민하라고 합니다. 무척 이상적이지요?
*부의 광맥
부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2번째 논문입니다.
부란 누군가의 착취의 결과물이거나 불공정한 거래의 소산일 수 있습니다. 내가 더 부자가 될 때, 누군가는 가난해질 수 있는 것이지요.
부는 타인에 대한 지배력에 바탕을 둡니다. 지배하는 가치가 커진다면 부의 가치는 더 증가합니다.
이익만을 추구할 때, 사회전체의 부는 오히려 감소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 자체가 부입니다.
*지상의 통치자들이여
제목처럼 통치자들에게 호소합니다. 이렇게 하자고요.
최소의 가격에 사서, 최대로 파는 것이 아닌, 합리적 가격에 사고팔아야 합니다.
재화는 갚을 때 이자를 붙이 듯, 노동력도 이후 만들어질 가치를 고려하여 갚아야 합니다. (현대적인 부가가치나 보너스의 개념.)
장래에 동등한 노동의 양과 질을 구입할 수 있는 금액으로 갚아야 해요.
정의를 기반으로 거래가 이루어질 때, 그것이 부의 재분배를 가능하게 합니다.
고용이 고용을 부릅니다.
일할 사람이 많다고 가치가 싸져서는 안 됩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더 작은 보수를 지불해서도 안됩니다.
현대적인 공정에 대한 해석이 인상 깊습니다.
*가치에 따라서
더 버는 경제학 대신, 제대로 소비하는 경제학이 중요하고 의미 있습니다.
가치 있다는 것은 생명에 유용하다는 것이다. 유용성이란 역량 있는 사람의 손에 들린 가치입니다.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이에게는 무용할 뿐입니다.
노동은 모두 신성 하나, 그 일의 결과가 한심할 수는 있어요. 쓸모가 있으려면, 그것을 활용할 유능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가 보다 그 돈을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얼마나 많은 생명을 생산해냈는가? 누군가의 손해를 바탕으로 한 이윤이 아닌,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한 경제학을 하라고 말합니다.
놀라운 러스킨의 목소리였어요. 이런 생각을 했던 사람이라니. 지금도 우리는 더 자주 러스킨의 말들을 떠올려야겠어요.
p195
생명이 곧 부다. 가장 부유한 국가는 최대 다수의 고귀하고 행복한 국민을 길러내는 국가이고, 가장 부유한 이는 그의 안에 내재된 생명의 힘을 다하여 그가 소유한 내적, 외적 재산을 골고루 활용해서 이웃들의 생명에 유익한 영향을 최대한 널리 미치는 사람이다.
p181
칭찬의 대상은 파종도 농장도 아니고 시간이 꽉 찬 후에 맺히는 열매다.
여러 달 동안 지난한 수고와 희생으로 한 생명을 창조한 사람에게 박수치는 데에는 인색한 사람들을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시민을 구조한 사람에게는 영예로운 화관을 씌워주면서 시민을 출산한 사람에게는 왜 그런 영예를 돌리지 않는 걸까? 물론 여기서 출산이란 온전한 육체만이 아니라 온전한 영혼에 대한 출산을 의미한다. 영국에는 두 영웅 모두를 위해 화관을 만들어 주기에 충분한 떡갈나무가 자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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